기타/남미

[남미여행] 맨하탄~리마까지

코드아키택트 2021. 2. 4.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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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로

 뉴와크 공항에서 리마로 떠났다. 나리타에서 미국으로 갈 때까지만 해도 같이 섞여있는 동양인 양놈들을 보며 아직은 내가 남미를 간다는 게 실감 나진 않았다. 의외로 미국으로 갈 때도 그렇게 이질감은 들지 않았던 거 같다. 아마도 수많은 매체로 푸른 눈의 외국인들을 접한 탓인 것 같다. 비행기 안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있던 것 같다. 그중 기억나는 것은 대학교 잠바를 입고 비행기를 탔던 사람으로 유학생이었던 것 같다. 대략 20시간의 비행을 자다 깨다 먹다 잠들다 영화도 틀었다가 하면서 가게 되었다. 

타임 스퀘어 사진 빨아쓰기

 스탑오버라는게 있었지만 제대로 활용할 줄 몰라서 뉴와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타임 스퀘어에 데려다 달라고 택시기사에게 말했다. 기사 아저씨는 숙소는 있냐고 하면서 나에게 물었고 무대뽀인 나는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나는 노숙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했는데 매우 위험하다고 아저씨가 말해줬다. 생각해보면 생명의 은인이다.

 

 무작정 타임스퀘어로 향했고 아재는 우선 여기가 타임 스퀘어인데 너의 숙소를 구한다음에 보는 게 좋겠다며 나를 위해 여러 숙소들을 같이 봐줬다. 아쉽게도 크리스마스 직전이었던 맨해튼은 나 같은 동양인에게 숙소를 내어주지 않았다. 우리는 전전하던 끝에 맨해튼을 탈출해 서쪽에 뉴저지에 모텔을 향했다. 아재는 자기 퇴근시간이 늦어지긴 했지만 흑인 특유의 말투로 '너는 나의 브라더 이자 패밀리이기 때문에 위험하게 있게 할 수 없다'라고 하며 나를 데려다주었다. 

 

미드에서만 보던 모텔

 모텔은 후줄근하지만 나의 여권도 확인했다. 그래서 참 신기했다. 어쨋든 티브이를 트니 '왕좌의 게임'이 나오고 있어서 이게 미국에서 보는 첫 티비프로그램이구나 하면서 지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낸 후 다시공항으로 향하기로 하였다. 

 

공동묘지

 아침에 시간이 어느정도 남아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중 눈을 사로잡은 것은 공동묘지였다. 한국이라면 혐오시설이 되어서 도심에 있을 수 없을 공동묘지가 호텔 바로 옆에 위치해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면 명절마다 산속에 안 가도 되고 참 좋으리란 생각을 했다. 

 

 그런 감상과 별개로 공항으로 넘어가기가 문제였다. 왕복 8차선 도로엔 건너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여행 시작과 함께 불법체류자가 될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던 중 어느 호텔에 가니 공항까지 데려다주는 벤이 보였다. 갱스터 랩을 잘할 것 같은 흑형이 일종의 안내원 같았다. 똥줄이 타던 나는 흑형에게 '이 벤에 타도 되냐?'라고 물었다. 그때 투숙객이 아니라는 말은 일단 접어놓고 물어봤던 것 같다. 그는 흔퀘히 타라고 했고, 공항에 갈 수 있었다.

 

 공항에서 시간이 조금 남아서 기념품점에 들어갔다. 그때 이니셜이 달린 기념품 하나를 샀다. 여기서 또 문화충격을 받은것은 면세점 알바로 보이긴 했지만, 피어싱을 주렁주렁 달고 있던 것이었다. 요즘 문신한 공무원이 한참 이슈였는데, 그런 것에 비하면 참으로 대단한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남미행 비행기에 오르는 길. 이제 정말 남미에 가는구나를 실감했다. 내가 티비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인종들이 보였다. 이 비행도 8시간은 걸렸던 거 같은데, 그때 비행기 안에서 봤던 카리브해의 맑은 색깔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왜 못 찍었지. 그때는 아는 게 너무 없었다.

 

페루의 수도 리마

 밤에 도착한 리마 공항이었고,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그나마 책 내용이 거기까진 맞았으니 다행이다. 안그랬음 나는 지금 여기에 없었을까. 별 생각을 다한다. 리마는 뭘 소개해야 할까. 리마는 크게 구도심과 신도심으로 나뉜다. 구도심은 북쪽에 위치해있고 신도심은 남쪽에 위치해 있다. 둘 사이는 걸어가기 좀 힘든데 나는 기어코 걸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안 그러는 것을 매우 추천한다.

 

 여긴 그냥 도시라 그다지 할게 없었다. 처음 성당을 볼 땐 신기하긴 했지만, 남미 여행을 하면 내내 보는 게 거기서 거기인 성당이다. 그 뒤의 역사를 모른다면 더더욱 그렇게 보인다.

여긴 또다른 성당

 여기에선 투어를 했던게 기억난다. 영어를 꽤나하는 현지인 가이드가 안내를 해줬고, 나를 포함한 외국인들이 들어갔다. 카타콤도 봤던 거 같다. 크게 기억나지 않는 거 보니 그다지 볼 건 없었나 보다.

리마에서 정말 제대로된 한끼. 다시 먹어보고 싶다.

 

 남미도 쌀을 잘 먹는다. 하지만 우리 입맛에 맞는 밥을 먹기란 정말 힘들다. 나중에 동행을 하게된 브라질 누나에게 들었는데, 남미에선 일부러 쌀이 잘 붙지 않게 하기 위해 기름을 뿌린다고 한다. 정말 어르신들 표현처럼 폴폴 날리는 쌀밥을 먹게 되는데, 초반엔 아주 고역이었다. 그래도 위에 나온 밥은 정말 좋았다. 그 후 다시 가보고 싶었지만 장소를 기억하지 못해서 다시 가보진 못했다.

 

 페루인들이 먹는 식사는 기본적으로 코스요리라고한다. 나도 쿠스코에서 현지식을 딱 한번 먹어봤다. 수프, 메인, 후식, 음료 이렇게 나오는데 정말 배불렀다. 물론 그 집은 밥은 맛이 없었고 위생도 후지긴 했다. 일본인 아재가 자기 갈 건데 같이 가보자고 그래서 따라갔다.

 

남미의 멍멍이들
저 산을 간다면 백프로 난 살아올수 없다

 

북쪽에 있던 공원
뭔가 하다 만듯한 느낌

 이 동네에서 타이완 할아버지를 만났다. 타이완 할아버지는 나를 보자마자 스페인어를 시켜봤다. 나는 당연히 못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Your father why?"라며 혀를 짜며 나를 손가락질 했다. 씌익씌익. 그러면서 너 이렇게 여행하면 아르헨티나 가서 총 맞아 죽는다며 겁을 줬다. 예나 지금이나 조무래기인 나는 매우 겁먹었다. 그리고 다음날 갑자기 베네수엘라 여자를 데려오더니 이 친구네 가서 스페인어 배우고 여행 다시 하라고 그랬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친구는 쿠스코 가서 만나긴 했지만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그 친구는 영어를 못했으니까. 그래도 페이스북 친구는 맺었었다. 베네수엘라 경제가 안 좋아지기 시작한 초창기에는 그래도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고 하던데 1~2년 전부터는 아무런 포스팅도 못 봤다.

 

 여기서 교통수단은 전철 비슷한 거랑 버스를 탔었다. 기념하려고 메트로 카드도 한국으로 챙겨 왔는데. 전철을 타고 가는 길 중간에 한인 교회가 한국어로 쓰여있어서 가서 뭔가 도움을 얻고 싶었다. 그러려다 그렇게 하지 않은 건 그렇게 궁하지 않았고, 해외여행이니 한국적인 것은 최대한 배제해보자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저 버스. 쿠스코를 갈때 탔더랬지.

 리마에선 여행 튜토리얼을 했던 것 같다. 이 친구들은 3시만 되면 문 닫고 잠을 자는구나. 7시만 되면 가게가 문을 안여는 구나. 생각 잘해야겠다. 이런 것들을 조금씩 익히던 시기였다. 

 

 다음엔 쿠스코 얘기로 넘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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