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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 페루-볼리비아] 안녕 페루, 안녕 볼리비아

코드아키택트 2021. 3. 1.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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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페루에서 볼리비아로 가던길과 라파즈에서의 기억들에 관한 이야기

 

 

 

본문

 

비엔베니도 아 볼리비아!(볼리비아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아디오스

 페루여행이 끝나고 드디어 볼리비아로 가게 되었다. 페루여행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왜냐하면 몇군데 못간곳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행 중후반부에 만나신 분들은 페루 여행 중 아레키파와 이카라는 곳이 정말 재밌다고 했다. 이카는 사막 버기투어가 가능하다고 했고, 이레키파는 왜였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나스카라인은 생각보다 별로란 평이 많았다. 더군다나 페루의 비행기도 그렇게 믿을만한 물건은 아니기때문에 안가는게 낫다는 평이 많았다.

 

 푸노에서 비자를 받고, 라파즈가는 버스에 올랐다. 여행 초반 리마에서 쿠스코로 가던 까마버스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굴러가는게 신기할 정도의 버스였다. 누군가는 허리아파서 못타겠다는 소리를 했던것 같다. 그 버스를 12시간은 타고 이동했던거 같다.

 

국경 넘는길

 

볼리비아 비자
국경넘고나서
국경 검문소

 국경을 넘는길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 난민마냥 버스에서 내려서 검문소에 들어가야 했다. 그런후에 각 사람들은 비자를 검사받으며 국경을 넘어가야했다. 나는 별탈없이 넘어갔던거 같다. 신기했던것은 중국사람들은 남미여행이 힘들다고 들었던거 같은데 일행중 중국인 한명이 여행을 잘 다니는 것을 보고 어디 저장성정도 간부 지인은 아닐까 싶었다. 그때 친해질껄

 

 라파즈까지 가는길은 물건너 산건너 뭔가 건너야하는 것들이 많았다.

코파카바나 항구
코파카바나
코파카바나 주변 호텔. 남미적인 색채
날이 맑은게 좋았다.
깔끔한 건물

 국경을 건너자마자 코파카바나라는 도시가 나왔다. 누군가 코파카바나에 대해서 얘기해줬던거 같은데 까먹었다. 호수 풍광이 좋아서 이런곳이 있는줄 알았다면 푸노를 줄이고 여기서 조금 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유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국경을 넘은 버스는 이곳에서 잠시 멈춰 우리에게 호수가에 갔다올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여기서 밥을 잠시 먹으며 시간을 보냈던거 같다. 참 여유로운 때였다.

 

호수에서 한방
버스 이동중
산을 건너는 버스
물을 건너는 버스..
사람은 따로 건넌다

 그 물이라는 것은 복선이었다. 물이 있으니 우리도 건너야만 했다. 정말 남미라서 경험할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일이었다. 강을 건너기 위한 방법은 간단했다. 버스를 배로 나르는 것이다. 헌데 배가 그렇게 크지 못했나보다. 그래서 사람은 사람대로 버스는 버스대로 따로 물을 건너야했다.

 

 극히 소수민족이 되어버리는 동양인인 나로서는 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 내 버스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항상 의심을 품고 지내야 했다. 그래서 누군가 한명을 꼭 기억해놓고 적당히 따라다니며 그런 불안을 해소했다. 사진에 보이는 가방멘 사람이 그 사람이었다. 

 

 배를타고 건너는 때엔 버스 승객 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같이 배를 타고 건너갔다. 나를보고 브루스리 라고 하면서 관심을 가졌는데 브루스리 마냥 때려주고 싶었다. 씌익씌익. 어쩃든 꿀렁거리며 배를 건너고 땅을 가로질러 라파즈로 향했다.

 

중간 어딘가
또 어딘가
대통령 궁이었나?
아마 그랬던거 같은데

 

이글레시아 이글레시아...

 라파즈는 볼리비아의 수도이다. 사진을 보고 있으니 도시를 어떻게 여행해야 하는지 참 난감하다. 자연은 그냥 그것을 보는것 자체로 뭔가 감상을 주는것이 있는데 도시라는 것은 살아보지 않으면 사실 그런 느낌이 없다. 아무런 역사도 알지 못하면 그냥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하듯이 그냥 건물은 건물이요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의미에서 라파즈에서 내 기억은 뭔가 설명할만한게 크게 없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분지 동네에 차 매연이 얼마나 심한지 숨을 못쉬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바깥 활동을 하기 힘들어서 대부분의 시간을 숙소에서 보냈던거 같다. 그리고 몇몇 시장에서 KPop물건들을 파는 것, 길거리에서 은으로 만든 제품이라고 파는 아주머니, 최초로 만난 한국인들 그리고 아저씨가 사준 한국 밥, 아주 약간 번역을 해줬던 기억 등등이 난다.

 

남미에서 첫 한식
아직도 있으려나
그렇단다.

 여행중에 나는 한국과 관련된 것들은 최대한 배제하려고 했다. 여행자들의 흔한 명언처럼 한국인의 적은 한국인이다 라는 생각과 여행 느낌을 내려면 철저하게 한국에서 분리되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양인에게 허락된 선택지는 그렇게 많지 않은것이 사실이다. 다행히도 이때 만난 한국분들은 좋은 분들이었다.

 

 한분은 남미여행을 하고계시는 40대 아저씨였다. 본인을 소개하실때 20대때부터 해외여행을 다녔고, 산을 정말 좋아하시는 분이었다. 특이점은 외국어를 전혀 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그분의 여행 방법은 이러하다. 카페를 통해 오직 한국 식당만을 간다. 한국 주인분에게 정보를 얻는다.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간다. 또는 우연히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면 밥을 사주고 하고싶은 것을 한다. 이런 방법이었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한분은 남미여행을 혼자하고 있던 여성분 이었다. 책도내고 나중에 "남미사랑"에서 진행하는 패키지 투어도 진행했던 것으로 알고있다. 시골여자라는 필명(?)으로 활동하신다. 결혼하신지 꽤나되었고, 지금은 육아에 집중하시는것 같다.

blog.naver.com/redsky2046

 

시골여자의 촌티나지 않는 여행 그리고 일상 : 네이버 블로그

아주 긴 여행을 멈추고 결혼을 했고 이제 육아를 시작합니다. :D. ____[생각지도 못한 곳에] , [당신도 쿠바로 떠났으면 좋겠어요] 저자.

blog.naver.com

 어쨋든 이분은 여행을 참 좋아했던거 같고, 여행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 알았던거 같다.

 

 우리가 만나게 된 이야기는 그저 우연의 연속이었다. 나는 한 숙소를 예약했고, 거기에 한국인 아저씨가 계셨다. 한국인 아저씨는 데쓰로드?인가 하는 산을 가고 싶어 하셨다. 하지만 영어가 안되었고, 나는 영어가 조금은 됐다. 그래서 숙소에서 연계해주는 투어를 통해 산에 가고 싶어하셨다. 나는 백수마냥 노닥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아저씨의 통역을 도왔고 그는 원하는 것을 얻고 대가를 주셨다. 그리고 대화 중간에 "남미여행"이라는 카페에서 "은이"씨랑 연락한다고 그랬다. 그래서 같이 밥먹자고 그랬나 그런식으로 서로 연결되게 되었다.

 

 아저씨가 산에서 돌아오고, 이 누나분과 라파즈에서 만났다. 우리는 택시를 잡아서 한식당으로 향했다. 택시 운전하는 젊은이는 차가 꽤나 좋은편이었는데, 아저씨는 "야 너 차 좋다?"라고 한국말로 개그를 치는 바람에 웃음참느라 힘들었다.

 

 한식당에선 남미여인이 서빙을 하였다. 아저씨는 소주와 삼겹살을 우리에게 사주셨다. "세뇨라, 쇠주" 하면 분주하게 움지깅며 "시, 쇠주"하며 허겁지겁 남미여인은 소주를 가져다 주었다. 아저씨는 취해서 누나에게 못생겼다며 뭐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의 여행 스토리를 들으며 재밌게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여행은 일본이라고 그랬고 그때가 20대라고 한다. 그 후로 산을 타기 위해 유럽, 아프리카 등지를 다녔다고 했다. 얻어먹는데 약간의 양심프레스를 느끼는 나에게 너가 나중에 나이먹어서 여행가면 아이들을 사줘라 이런 얘기를 해주셨다. 헤헷. 한국인들과의 대화와 시간은 그냥 즐겁게 지났다.

 

라파즈의 거리. 시에스타 시간이었던거 같다.
언덕길
남미스런 색감
노란맛
비굦거 낙후
약간 위험해보이는 거리
어린이들
투머치 밝음
어딜가나 퍼포먼스

 라파즈의 거리를 조금 돌아다녔는데, 크게 기억에 남는건 없다. 언덕이 아주 꿀렁거리는 동네이고 꽤나 컸다. 

 

 내가 여기서 했던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르헨티나 돈을 바꿨던 것이다. 초반부 글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아르헨티나여행을 싸게 하기 위해선 현지에가서 달러를 아르헨티나 돈으로 바꾸는 것이다. 뭐 거의 도박이나 잭팟하는 느낌인데, 때에 따라서 1.5~4배 까지도 왔다갔다 했던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깜비오"에 가서 아르헨티나 돈을 바꿨다. 이틀에 나눠서 바꾼것으로 기억한다. 그 중 한 환전소에서 아르헨티나 돈을 내가 다 바꿔가는 바람에 뒷사람이 못바꾼 적도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어마어마하게 바꾼거 같지만 뭐 그렇지도 않다. 

 

 

세븐... 갈비남..
구준표

 내가 갔던게 2013년이다. 남미에선 한국은 두가지로 크게 알려져 있었다. 하나는 과연 남한과 북한은 전쟁을 일으킬것인가. 다른 하나는 한류였다. 그때당시 한국 문화가 꽤나 퍼져있었다. 나중에 또 한번 재잘재잘 이야기 하겠지만, 콜롬비아의 한 도서관에서 한국드라마를 보는 콜롬비아인을 만나기도 했다. 재미난 일이었다.

 

 동네 마실하듯이 라파즈에 다니고 다음 동네로 이동할 준비를 하였다.

버스 정류장에서 한컷. 저 멀리 설산이 아마도 데스로드
그 옆 뷰 였을 것이다
낮에 예약하고 밤에 떠난 버스. 분지에 수놓은 집들이 압도적이었다.

  이쯤부터는 여행의 자유도가 조금씩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책이 더이상 쓸모 없다는 것을 알고, 인터넷에서 요리조리 책을 다운받았다. 그때 본게 론리 플래닛이랑 다른책이었는데, 다른책이 내 입맛엔 맞았다.

 

 

 라파즈를 떠나는 버스는 밤에 출발했다. 또다시 몇시간에 걸친 버스였지만 쿠스코 24시간 버스 후에 다른것은 뭐 그냥 그랬다. 한국인과 유독 많은 만남이 있었던 라파즈를 떠나는 버스도 한국 컨텐츠를 보여줬다. 바로 "실미도"였다. 근혜찡과 장으니가 참 큰 역할을 한 덕분에 영화를 보게 되었다. 먼 나라에서 한국영화를 보게된다는게 참 반가웠지만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하는 설경구와 안성기씨를 보며 참으로 묘한 느낌에 휩싸였다. 내가 한국에서도 안본 실미도를 남미에서 스페인어 버전으로 먼저보게 되다니.

 

 그렇게 영화를 보다가 어느센가 잠이 들었던거 같다. 그리고 어느센가 다음 목적지에 다다랐다.[다음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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