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볼리비아에서 꽤나 괜찮은 상태였던 도시
본문
여기서 뭘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꽤나 오랜시간 머무르면서 한국 사람들을 만났다. 어느 외국계 회사를 다닌다는 한국분도 있었고 꽤나 오랜시간 머무르던 한국 분도 있었다.
여길 왜 갔나 잘 기억이 안난다. 그래서 왜 갔는지 나를 위해 다시 구글링을 해야겠다.
수크레는 설탕이라는 뜻이다. 소금은 살이라고 그랬다. 수크레는 유네스코 도시였구나! 유네스코에 써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겨본다.
볼리비아의 첫 수도인 수크레는 16세기 전반 스페인에 의해 설립되었다. 산 라사로(San Lázaro), 산 프란시스코(San Francisco)와 산토도밍고(Santo Domingo)와 같이 잘 보존되어 있는 16세기 종교 건물들의 대부분은 유럽에서 전래된 양식과 현지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을 조화를 이룬 것이다.
스페인 정복자들의 도시인 수크레 역사 도시(Historic City of Sucre)의 풍부한 유적은 유럽의 건축 양식과 현지 전통 건축 양식이 조화를 이루어 건설된 도시로, 라틴아메리카에서 확립된 새로운 혼합건축양식이 온전하고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지역이다. 수크레는 과거에 라플라타(La Plata), 카르카스(Characas), 키유다드 블랑카(Ciudad Blanca) 등으로 불렸다.
라플라타의 도시는 1538년 페드로 데 안주레스(Pedro de Anzures), 마르케스 데 캄포 로톤도(Marqués de Campo Rotondo)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 기반은 안데스 대산맥의 동쪽 산악 지역을 탐험하는 데 관심이 있었던 곤살로 피사로(Gonzalo Pizarro)가 총괄한 광산 활동의 결과로 가능했다. 1559년 스페인 왕인 펠리페 2세(Felipe II)는 동쪽 영토를 관리하려고 라 플라타 도시에 본부와 오디엔치아 데 카르카스(Audiencia de Characas)를 설치하도록 명하였다. 오디엔치아는 사법권과 행정권을 가지고 있었고 현재는 파라과이, 페루 남동쪽, 칠레 북쪽과 아르헨티나와 대부분의 볼리비아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지역을 관할하고 있다
스페인 정복자들의 도시는 16세기 아메리카 대륙 내 다른 스페인 식민 도시들처럼 도시 계획에 따라 디자인되었다. 포토시 주변 도시의 광물 자원으로 얻은 부는 산 프란시스코 대학(Universidad de San Francisco), 카롤리나 왕립학교(Royal Academia Carolina), 산 이사벨 데 훈그리아 세미나리오(San Isabel de Hungria Seminario) 등 중요한 문화 중심지를 설립하고, 현재 대법원의 전신인 카르카스 오디엔시아의 관할지이기도 했던 라플라타의 경제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도시는 1609년 대주교의 관할권이 되었으며 17세기 동안 라플라타는 스페인 정복자들의 동쪽 지역의 법적 · 종교적 · 문화적 중심지가 되었다. 이 지역의 최초의 독립에 대한 움직임은 1809년 라플라타에서 일어났다. 1825년 8월 독립이 선포되었으며, 새로운 공화국이 볼리비아라는 이름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같은 날, 이 도시의 이름이었던 라플라타는 스페인 통치로부터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안토니오 호세 데 수크레 장군(Mariscal António José de Sucre)을 기리며 수크레로 변경되었다.
이 도시의 역사 중심부에 있는 건물들은 18세기 현지 건축의 특징을 보여 주며, 같은 시기 포토시에서 지어진 건물들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의 건물들은 여전히 안뜰이 있으나 스페인 본국에서 들여온 신고전주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 가운데 ‘자유의 집(The House of Freedom)’은 볼리비아를 독립으로 이끈 사건들이 일어난 곳이기 때문에 이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기념비로 지정하고 있다. 이곳은 1621년에 예수회 수도원(Convent of the Jesuits)의 일부로 건설되었다.
많은 종교 건물들은 16세기에 거슬러 올라가며 스페인 식민지 정착민들에 의해 건설된 스페인 식민도시 초기의 특징을 담고 있다. 예컨대 산 라사로(San Lázaro), 산 프란시스코(San Francisco), 산토도밍고(Santo Domingo) 처럼 1559년에 건설되기 시작하여 250년이 지난 이후에도 완전히 완성하지 못했던 ‘중앙 대성당(Metropolitan Cathedral)’이 그렇다. 그 건축은 르네상스, 바로크, 그리고 ‘메스티조 바로크(Mestizo Baroque)’ 양식을 띠고 있다. 산타 바르바라 교회(church of Santa Barbara)는 볼리비아에서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축된 유일한 교회이다. 수크레에 있는 모든 교회들은 유럽에서 전래된 양식에 현지의 건축 전통을 혼합한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요약하면 세가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스페인의 건물 양식이 현지에 잘 녹아든 취지가 있는 도시라는 얘기다. 둘째는 여기를 만들때 사용된 대다수의 돈은 포토시로 부터 얻어진 수익을 이용해 지어졌다는 것, 마지막으로 스페인으로 독립 투쟁을 한 수크레 장군을 기리며 수크레로 바꿨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설탕 드립은 그렇게 맞지 않는다는 말도 된다. 근데 왜 난 여기 동네가 하얗게 칠해진게 기억나지.
여튼 도시이름은 그렇다. 그리고 분명 하얀게 많았고, 책에서도 하얀색을 강조했던거 같다. 수크레에 들어올땐 남미의 파업을 경험하게됬다. 누군가 남미 여행기에 광부들의 파업을 써준적이 있던거 같다. 남미에서 광부들이 파업하면 버스가 지나다니지 못하게 다이너마이트를 던진다고 그랬다. 쉣.
내가 수크레에 갔을땐 운송노조들이 파업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도시로 들어갈 수 없어 버스는 우리를 적당한 곳에 내려주고 걸어가라고 그랬다. 시작부터 고생길.
도시는 대강 이렇게 생겼다. 다 허여멀건하고 정말 도시다. 기억에 남는것은 대형마트가 있었다는것과 양인들이 많이 여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펍이 많이 발전되어 있는 그런 곳이었다.
여기선 숙소에서 죽치고 쉬었던 기억만 난다. 그럼 그 얘기나 써봐야 겠다.
내가 머문 숙소에선 여행 중 두번째로 오래 여행한 한국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때당시 IT업계에서 일한다고 그랬으니 지금까지 하셨다면 대단한 사람이 되셨을거 같다. 수크레에서 거의 지박령처럼 계시는거 같았다. 물론 그는 이미 우유니 사막을 다녀왔고 나에게 많은 팁을 전해주셨다.
그때당시 30대 이셨던거 같은데 나름의 분위기와 재미로 꽤나 친하게 지냈었고, 헤어질때는 조금 아쉬움도 남기는 했었다. 이 동네에서도 스페인어를 배우고 여행을 시작하시는 분들도 꽤나 있다고 들었던거 같다. 내가봐도 여기서 배우는것도 괜찮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마땅히 할만한 활동이 없기도 하지만 그냥저냥 눌러있기도 좋은 동네였기 때문이다. 다음글에 아주 짧게 쓸 예정이지만 무슨 공룡 동네가 수크레에 있긴 했다. 근데 어린이용 느낌이라 굳이 안가도 될거 같긴 했다.
그 한국분한테서 사진기를 다루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배우게 되었다. 그 뒤에 그나마 조금은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었던가 여튼.
근데 쓸말이 별로 없다. 그냥 사진 올린것으로 만족해야 겠다.
다음 글에 공룡 동네에 갔던 이야기를 하고 바로 우유니 이야기로 넘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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